치매머니 154조 시대
동결 자산과 상속의 그림자

고령화가 가속하는 한국에서 ‘치매머니’—치매로 판단능력이 저하된 고령자가 보유하지만 제대로 운용·이전되지 못하는 자산—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이미 2020년 기준 치매 고령자가 보유한 자산이 약 250조 엔으로 추산되며(금융 170조·부동산 80조 엔), 2040년엔 345조 엔으로 커질 전망입니다.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정부 첫 전수조사 결과, 2023년 국내 고령 치매환자 약 124만 명이 쥔 자산(치매머니)은 154조 원(GDP의 6.4%)으로 파악됐고, 치매 인구 증가에 따라 2050년 488조 원(예상 GDP의 약 15.6%)까지 팽창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자산이 생전 활용·이전되지 못한 채 묶이면, 본인은 간병·생활비 조달이 꼬이고, 가족은 상속 시점이 뒤로 밀리며, 사회 전체에선 자본 순환이 둔해집니다. 따라서 치매로 인한 자산 동결은 ‘개별 가정의 문제’가 아닌, 제도·시장 차원의 리스크로 다뤄야 할 과제입니다.
동결 자산 : 왜 ‘시장 밖’에 머무는가
치매는 금융거래·부동산 처분 등 고액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일본 대형 신탁은행의 추정처럼, 치매자 보유 금융·부동산이 각각 가계 전체의 8~9%를 차지하는 구조에선 ‘운용 불능’ 자산이 누적될수록 투자·소비로 재투입되는 통로가 막혀 버립니다. 한국도 치매머니 154조 원 중 약 74%가 부동산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속·매각 의사결정 지연 시 지역 거래량 감소, 상속세 재원 마련의 곤란 등 실물경제 파급이 크다는 뜻입니다. 정책적으로는 (1) 사전 설계 장치의 대중화(유언·신탁·후견), (2) 법정대리 기반 거래의 절차·표준화, (3) 고령층 자산 관리의 공공-민간 연계(후견·신탁·보호계정 등) 확대가 필요합니다.
‘노노(老老)상속’으로 인한 가족 분쟁의 증가
상속 개시가 90~100세 부모에서 70~80대 자녀로 넘어가는 ‘노노상속’이 일상화되며, 형제 간 역할·기여도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쟁의 불씨가 됩니다. 법원 통계 기반 보도에 따르면, 가정법원의 ‘상속재산 분할에 관한 처분’ 접수는 2014년 771건에서 2022년 2,776건으로 약 3.6배 증가해 역대 최대였습니다. 상속 갈등이 ‘부유층 이슈’에 그치지 않고 중산층으로 확산됐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간병 집중자로부터 “더 받아야 한다”는 요구와 다른 상속인의 “자산 관리 불투명” 의심이 맞물리면, 동결 자산을 해제하는 과정 자체가 갈등의 무대가 됩니다. 해결의 핵심은 ‘사전 합의’와 ‘증빙 가능한 투명성’이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상품의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자산 동결을 막는 법 : 유언대용신탁과 후견제도
유언대용신탁은 본인이 건강할 때 금융회사와 신탁계약을 맺어 “생전 운용–치매 시 지출(치료·간병비)–사후 분배”의 로직을 계약으로 고정하는 장치입니다. 최근 시중은행은 최소 가입금액을 낮추고(예: 금전 1천만~5천만 원 수준), 가입·집행 절차를 간소화해 대중화를 시도합니다. 국내 5대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2025년 2분기 3조7,663억 원으로 ‘4조 원 임계’에 근접했습니다. 계약 시점의 의사능력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발병 전·초기에 설계하는 선제적 가입이 관건입니다. 한편 이미 판단능력이 상실된 경우엔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 등 법정후견을 통해 가정법원 결정과 감독 하에 재산 거래를 추진해야 합니다. 임의후견(민법 제959조의14)은 공정증서 계약 후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시 효력이 발생하므로, 가족 내 신뢰 인물을 지정해두는 것이 분쟁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투명한 관리와 가족 커뮤니케이션의 표준화
한 명이 부모 재산을 대리 관리할수록, 다른 형제는 ‘횡령 의혹’을, 관리자는 ‘억울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이를 줄이려면 (1) 가족회의 정례화(분기/명절), (2) 공용 폴더·스프레드시트에 지출·인출·잔액·증빙 이미지 업로드, (3) 간병·생활비 집행기준(월 한도·결재 라인) 합의, (4) 분기별 결산·잔액 보고 후 확인 서명 같은 ‘운영 프로토콜’을 미리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후견 개시나 법정 분쟁으로 넘어가면 시간·비용·감정 소모가 급증하므로, 생전에 투명한 규칙을 세팅해 두는 것이 최고의 분쟁 예방책입니다.

노노상속연구소의 실전 팁
- 임의후견계약·등기 선제 체결
공정증서로 임의후견계약을 맺고(민법 제959조의14),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면 효력이 발생합니다. 치매 진단 전·초기, 신뢰 가능한 가족·전문가를 후보군으로 정하고, 후견 범위(금융·의료·부동산)와 보고 주기를 계약서에 구체화하세요. 후견 개시 후에는 법원 감독 하에 거래가 가능해집니다. - 유언대용신탁으로 생활비·간병비 자동화
은행 신탁을 통해 ‘생전 본인 수익–치매 시 간병비 자동 집행–사후 분배’를 계약에 박아 두면 동결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최근 은행들은 최소 가입금액 인하 등으로 대중화를 추진 중이며, 5대 은행 잔액은 2025년 2분기 3조7,663억 원(연내 4조 원 돌파 전망)에 근접합니다. 치매 전 진입이 필수이니, 가족회의→상품비교→수수료·집행조건 점검 순으로 준비하세요. - 사전증여 10년 전략 수립
상속 개시 전 10년 이내 직계존비속 간 증여는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됩니다. 반대로 충분히 이른 시점의 분산 증여는 증여재산공제(성인 자녀 5천만 원/10년) 등을 활용해 총세부담을 낮출 수 있습니다. 부모 각각의 증여가 합산될 수 있는 ‘동일인’ 규정과 10년 합산 원칙을 반드시 확인하고, 자금출처·평가·신고 일정을 미리 설계하세요.